독서모임을 참여하면서 여태껏 실무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더랬다. 이번달에는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는데, “실무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뜬금없는 소설집이라니…?”라는 생각 했다. 한참을 미루다가, 독후감 제출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야 꾸역꾸역 책을 펼쳤다. (E-book으로 읽었으니 책 파일을 열었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총 5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각 작품의 분량이 길지 않아 책을 부담 없이 읽었다. SF 소설이라는 장르적인 공통점은 있었으나, 각 작품마다 독특하고 참신한 설정과 내용들 덕분에 흡입력 있게 책에 빠져들었다. “웬 소설집?”이라고 투덜대던 며칠 전의 나를 잊은 채.
책에 수록된 작품 중 특히 [삼사라]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에 대한 짧은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조서월: 삼사라]
위 작품은 모든 영혼이 삶과 죽음을 거듭하는 동안 쌓아온 공덕과 업보에 따라 환생하는, 이른바 윤회의 설정을 가지고 와서 SF 소설에 접목시킨 것이 매우 참신하게 다가왔다.
작중의 주인공인 세라와 에이브는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감정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영혼이 없는 아기들을 배양하고 기른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아이들은 육신을 구원받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갔다. 소각로의 구멍이 내던져진 채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세라와 에이브는 누구보다 괴로워한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배양하고 살리려고 애쓰는 두 기계의 몸부림을 보고 있으면, 더 이상 윤회의 삶을 살지 못하는 추악한 인간들보다 더 인간스럽게 보였다. 마지막에 세라와 에이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인들의 죄를 짊어진 채 행성에 충돌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때 쌍둥이로 태어날 인간의 두 육체에 영혼이 깃들었다는 묘사는 너무나 역설적인 결말로 느껴졌다.
나는 쌍둥이의 육신에는 세라와 에이브의 영혼이 깃들었으리라 추측한다. 모든 인간의 영혼은 이미 추락해서 더 이상 윤회의 삶을 살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 영혼 없는 태아들을 배양시키며 잡아먹는 추악한 인간들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수행한 세라와 에이브가 종국에는, 인간들과 본인의 죄를 인정하고 약속의 땅에 발을 내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윤회의 삶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 같았다.
같은 맥락으로, 소설 도입부를 보면 삼사라, 니르바나라는 2개의 함선이 세라와 에이브 간의 대화 속에서 언급된다. 세라와 에이브가 타고 있는 삼사라 외에, 니르바나는 결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걸로 묘사되다. “니르바나”는 산스크린어로 죽음 또는 열반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고 더 이상 어떠한 고통과 욕망이 없는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상태”를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고 죽음으로써 열반(니르바나)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설의 결말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면, 세라와 에이브가 깨달음을 얻고 죽음으로써 니르바나의 경지에 도달하여 그들의 영혼이 윤회하여 인간의 몸에 깃들게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